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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ずっと好き♥

永遠を求めるヒーロー


@
paricommi

 

 

한때 자상한 부모들이 자식들의 작은 손을 잡고, 사이가 돈독한 연인들이 팔짱 끼고 왕래했을, 바다와 맞닿은 아쿠아리움. 역에 멀리 떨어진 그 수족관에 가기 위해서는 노선버스를 타야 했으나, 사회가 흐트러진 지금 정상적으로 버스가 운행할 리 없었고, 하네키와 토우야는 튼튼한 두 다리를 믿고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며칠째 두꺼운 먹구름이 낀 날씨와 버스로도 7분밖에 걸리지 않는 그다지 멀지 않는 거리 덕분에 건장한 청년 둘에게는 담소 좀 나누다 보면 ― 담소라 해도 한쪽이 열 마디를 나불댈 동안, 다른 한쪽은 이렇게까지 걸어가야 할 가치가 있냐, 아무 차나 탈환해서 타고 가면 안 되나, 따위의 시큰둥한 문장을 한두 마디 툭툭 내뱉는 정도였지만 ― 금방 도착하는 위치였다.
“어라, 한 시에 돌고래 쇼가 있대. 지금은 당연히 못 보겠지?”
“헛소리를….”
아쿠아리움보다는 생태 공원에 가까운 구조의 수족관의 직원 없는 매표소를 지나가면,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 너머로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관람관이 보였다. 하네키는 토우야의 손을 잡아끌어 다리를 건넜다. 다리에 설치된 안전 펜스에는 돌고래와 관련된 정보가 한가득 적힌 안내 패널이 붙어 있었다. 한때 자연환경을 표방했지만, 결국 망에 갇혀 인간들 앞에서 재롱을 부렸을 돌고래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돌고래 사육터의 주인공인 돌고래가 보이지 않자 하네키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노골적으로 실망감을 내비쳤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액티비티용 보트는 넘실거리는 파도를 따라 위태롭게 흔들렸다.
“저기 돌고래 동상 보이네. 달링, 데이트할 준비는 됐어?”
“데이트는 무슨. 그보다도 한 마리는 머리가 부서졌는데.”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자고!”
관람관 입구 옆에부터 이곳이 수족관이라는 것을 알리듯 꽤나 큰 야외 수조가 있었지만, 물은 대부분 증발했고 벽면에는 이끼와 녹조가 그득했다. 그 안에는 어떠한 생명체도 없었다. 고여 썩어가는 물을 전시한 수조는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니. 계속 이런 혜택이 있다면 현상 유지도 제법 좋을지도.”
사람들은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며 살아가고 뉴스에는 하루에도 몇 건씩 범죄 소식이 쏟아진다. 그런 불안정한 세상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시민들을 지켜야 할 히어로가 당당히 말한다. 보는 눈이 있었어도 그는 제 발언을 실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작긴 하다. 그래도 이런 곳도 나름대로 운치 있어서 좋긴 해!”
“퍽이나. 데이트 장소로는 형편없다는 감상밖에 안 나와.”
비단 좁고 노후한 시설 탓은 아니었다. 처참히 파괴된 돌고래 상처럼 아쿠아리움 내부도 말이 아니었다. 팸플릿은 바닥에 흩어져 쓰레기로 전락했고, 안내판과 잡지 랙이 넘어진 탓에 어수선했다.
토우야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깔끔했던 수족관을 머릿속에 그렸다. 자신과는 연이 없는 장소였다.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부모의 손을 잡고 놀러 다니긴커녕 히어로가 되기 위해, 자신의 체질을 뛰어넘기 위해 훈련하기 바빴다. 아니, 제 집념이 없었더라도 그런 표면이 그럴듯한 가정이라면 꿈도 못 꿀 게 분명했다. 차라리 행복한 기억이 없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쯤, 하네키가 토우야의 손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이거 봐. 해파리가 엄청나게 죽어 있어.”
본래 해파리 수조라면 가지각색의 빛을 받으며 유유자적하게 헤엄치는 부유형 생물을 관람하는 것이 포인트거늘, 수조 안에 든 건 하네키가 켠 플래시를 받으며 바닥에 가라앉아 반쯤 썩어 몸체가 흩어지기 시작한 반투명한 사체였다. 그것은 해파리라기엔 비닐 덩어리로 보일 만큼 무기질했다. 그게 보여줄 것의 전부였다는 듯, 하네키는 금세 플래시를 다른 수조로 비췄다. 그곳에는 그나마 물고기 몇 마리가 살아 있었다. 바닥에는 알 수 없는 오물들이, 수면에는 살점이 뜯기고 배를 까뒤집은 물고기 사체가 수두룩했다.
“그래도 얘넨 먹을 게 있어서 살았나 봐.”
앞으로도 열심히 이겨내야 해! 하네키는 동족을 포식해서 살아남은 개체들을 응원했다. 형태가 어떻게 되었든, 그 방식이 무엇이든, 살아남는다는 것은 중요했다. 적어도 하네키는 그렇게 여겼다. 토우야는 그의 목소리를 혼잣말 취급하며 제 손을 잡은 온기를 뿌리쳤다. 하네키가 들고 있는 빛에서 멀어지는 건 달갑지 않았지만, 이미 눈은 어둠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소음은 한 명분의 목소리뿐이었고 고요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는 제게 안성맞춤이었다. 토우야는 한 물고기의 설명문을 읽었다. 네온테트라. 빛을 반사해 푸르게 빛나는 소형 어류. 무리 지어 헤엄치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토우야는 시선을 곁으로 돌려 네온테트라가 들어 있을 수조를 찾았다. 그러나 수조는 누군가가 야구 방망이로 가격한 것처럼 깨져 있었다. 바짝 말라 시든 수초 사이로 부패하여 뼈를 보이는 네온테트라 사체들이 수두룩하게 엉켜 있었다. 토우야는 문득 의식하지 않았던 비린내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여과기에 낀 녹조가, 썩어가는 시체가, 말라가는 물이 내는 미끈한 악취. 토우야는 다시 발을 내디뎠다. 깨진 유리가 그의 구둣발에 밟혀 조각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토우야, 다치지 않게 조심해.”
“신경 꺼.”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건 수달 우리였다. 수달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설치된 미끄럼틀이니 해먹이니 하는 놀이기구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먹이를 먹지 못해 기력이 쇠한 수달들은 우리 구석에 모여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만히 누워 구원의 손길이 오길 기다리는 것이 그것들 나름의 생존 전략인 모양이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살고 싶다고, 자긴 여기 있다고 빽빽 울며 우리를 돌아다니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내려두고 다가올 구원을, 혹은 죽음을 기다리는 편이 편했다.
토우야는 우리의 유리와 연결된 관의 뚜껑을 열었다. 먹이 주기 체험 시간이 적힌 안내문이 걸린 걸 보아 관을 통해 관람객이 먹이를 주는 구조라고 그는 추측했고, 정답이었다. 뚜껑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건지, 쥐 죽은 듯 자고 있던 수달들은 삑삑, 잔뜩 갈라진 울음소리를 내며 관 근처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가장 먼저 도착한 수달이 관 안쪽으로 앞발을 넣어 토우야에게 발을 뻗었다. 관에서 조금 튀어나온 갈색 발은 애처로이 허우적거리며 제발 먹이를 달라고 애원했다. 그보다도 조금 덩치가 큰 다른 한 마리가 관 앞에 있던 녀석을 밀치고는 우렁차게 소리를 질러댔다. 쟤 말고 나 먼저 밥 줘요. 그리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토우야는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지갑과 휴대전화, 쓰레기 정도가 전부였다. 그는 제 손가락을 감싸 쥐는 작고 가는 발가락의 끄트머리를 매만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살려 달라고, 인간의 언어로 생명을 구걸하는 사람들도 눈 깜짝하지 않고 죽여온 악인이 고작 삑삑 울어대는 짐승한테 그런 애틋한 감정을 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목숨을 앗아갈 때와는 다른 감정이 일었다. 꼴좋다, 시원하다, 그런 것과는 결이 다른….
세코토 언덕에서 홀로 누군가를 기다렸을 때 어떤 마음이었더라. 아버지가 자신을 만나러 왔다면.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더 나를 마주했다면. 아버지가 날 ‘아들’로 키웠더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과거로 파고 들어가도 떠오르는 문장은 전부 똑같았다. 그랬더라면,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 텐데. 인간들이 날 찾아줬다면. 인간들이 날 풀어줬다면. 인간들이 날 우리에 가두지 않았더라면. 이 수달들은 어린 시절의 자신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토도로키 토우야는 위인이 못 되었다. 그는 올 포 원이 제게 그랬던 것처럼 수달들을 구해주지 않았다. 유리를 깨주지 않았다.
“무슨 생각해, 토우야. 날 봐야지.”
물론 깨고 싶어도 사사건건 그에게 참견하는 동행인 때문에 그 시도는 수포가 되었을 것이다.
“아쿠아리움이 물고기 보라고 있는 곳이지, 널 보라고 있는 곳이었나?”
토우야는 한껏 비아냥거리며 관의 뚜껑을 다시 덮었다. 수달들은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하네키 쪽으로 가 울었지만, 그의 시선은 오로지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에 매몰된 토우야도 사랑스럽긴 해. 그렇지만 ‘지금’은 나를 봐주면 좋겠어. 그런 생각이 언제부터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네키가 기억하는 과거, 현재, 그리고 헛되이 그려보는 미래 그 모든 순간에는 토도로키 토우야가 있었다. 그가 새겨진 기억이 아니라면 잘라내도 괜찮다고 여길 만큼, 그의 인생은 토우야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토우야는 아니었다. 그의 시선이 가닿는 곳은 언제나 가족의 흔적이었다. 그곳에 쿠루쇼 하네키라는 없었다. 그가 가족에게 돌아간다면 하네키의 존재는 이름마저 남지 않고 깔끔하게, 애초부터 없었던 인물인 것처럼 지워져 버릴 것이다. 그건 하네키가 바라는 결말이 아니었다. 자신을 무시해도, 아주 가끔 다른 사람을 입에 올려도 괜찮으니… 자신이 그러는 것처럼, 그 또한 시야에 온전히 자신만을 담길 바랐다.
집착과 사랑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낯부끄러운 날것의 소원이었다.
“그래도 나름 데이트잖아. 아. 아니면 설마…. 흠, 나한테 눈길을 안 주는 이유가 그런 곳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 내가 동물이 되면 귀여워해 줄 거야? 쓰다듬고,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토우야가 평소처럼 무어라 일갈하기도 전에 하네키는 다시금 그의 손을 잡아 어딘가로 끌고 갔다. 토우야는 당황하며 눈을 크게 떴지만, 그와 동행할 때마다 숱하게 벌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크게 내색하진 않았다.
둘의 종착지는 커다란 수조 앞이었다. 두 층에 결쳐 만든, 제법 공들인 메인 홀이었다. 그 안에는 여타 수조처럼 살아 헤엄치는 물고기가 반, 죽어 부유하는 사체가 반이었다. 그나마 살아 있는 것들조차 관리가 되어있지 않아 지느러미가 너덜너덜하고 곰팡이 감염병이 걸려 있었지만, 하네키와 토우야가 알 길은 없었다.
하네키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토우야의 손을 들어 올려 그의 손등에 살며시 입 맞췄다. 툭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주제에. 토우야는 구태여 상대를 비방하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에게 꼬투리 잡을 건수를 줘서 좋을 것 없었다. 꽤나 다정하고 애정 담긴 스킨십에도 토우야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았다. 하네키는 그의 손을 잡은 채 옆으로 팔을 뻗었다. 마치 왈츠라도 추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불쌍한 토우야. 슬퍼?”
그리 말하는 하네키의 얼굴은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가벼운 미소. 가벼운 시선. 그는 변함없이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했다. 가끔은 농담을 던지다가도 가끔은 손을 올리고 가끔은 사랑을 고백했다. 그건 그 자신이 토우야에게 보여줄 수 있는 확신이었다. 언제까지고 토우야의 곁에 머무르겠다는 확신. 토우야에게 닿진 않지만, 그래도 백 번, 천 번, 그것도 안 되면 만 번이라도 보여주면 제 감정의 편린이라도 그가 알아줄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너무 괘념치 마. 아니면 차라리 나한테 모든 걸 맡겨보는 건 어때.”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런 날은 안 와.”
하네키가 끔찍하게 못 하는 것 중 하나는 진심 어린 위로였다. 결국 시시껄렁한 농담 같은 마무리로 토우야의 비웃음을 사는 게, 그의 위로의 결말이었고, 이번에도 다를 것 없었다. 제아무리 서툰 말로 표현해봤자 그에게 닿지 않는다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침묵으로, 그리고 몸으로 표현하는 것. 그는 토우야의 움직임에 맞춰 스텝을 밟다가도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그를 이끌기도 했다. 깔린 음악도, 보는 관객도 없는 댄스홀. 서로가 속으로 떠올리는 음악이 달라 박자가 어긋나도 그럴듯한 모양새였다. 누군가 먼저 손을 놓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둘만의 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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